홍상수, 당신자신과 당신의것 영화


과거가 없는 여자

'당신 자신'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현재의 모습, 지금의 나를 드러내는 특징, 그 현재는 당신 그 자신이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이 없다면, 매번 당신이 다른 사람이라면, '당신의 것'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당신 자신'이라는 특징과 '당신의 것'이라는 개념, 그 사이에는 '시간'이 있다. '당신 자신'의 누적이 '당신의 것'을 규정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홍상수의 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것' 에서는 이 '시간'을 휘발시키고 '당신의 것'을 규정하는 기억과 과거가 없이도 현재의 '당신 자신'을 바라보고,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끝없이 '변신'하는 여자, 민정은 과거가 없는 여자이다. 마치 기억상실증처럼, 그녀는 매번 다른 사람인 '척' 한다. 그녀는 자신이 카페에서 읽고 있는 책 (카프카의 '변신')처럼, 매번 변신한다. 그녀의 '변신' 때문에, 그녀가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인 '척'하는 것 때문에, 영수는 민정과 언쟁하고 헤어진다. 이후 뜬금없이 영수는 다리가 부러진 채로 등장한다. 영수의 사고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 동안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그들 각자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지지 않는다. 그가 다리를 다친 것은, 마치 그녀와의 언쟁 이후로 그녀를 '잃은'것에 대한 표상인 듯 하다.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는 마치 다리가 부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영수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민정이 소문처럼 남자'들'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다닌다는 소문을 머릿속에서 재현하는 영수의 환상의 재현인 듯 하다.  

민정은 영수와 헤어진 이후 두 남자를 마주치는데, 두 사람과의 만남은 매번 같은 술집의 같은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두 사람은 정확히 같은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감으로써 시작하는 (어쩌면) 두 번의 서로 다른 만남 역시 그러하다. 남자들이 그녀에게 다가가는 방식은 언제나 같고, 그리고 얼마 후 그들은 그녀에게서 사라진다. 마치 두 남자는 한 사람인 것처럼, 나타나고 사라지는 방식은 동일하다. 민정은 다른 남자들을 마주칠 때마다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영화는 처음에는 여자의 거짓말을 탐문하게 한다. 여자를 아는 듯한 남자들에게 모른다고 거부할 때마다, 그녀가 정말 출판사에서 일한 적이 없는지, 그녀에게 정말 쌍둥이 언니가 있는지 계속 반문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게 되는 시점부터, 그녀의 현재의 모습, 그녀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녀는 술을 좋아하고, 그러나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에 조심하려 하고, 남자들이 좋아하는 제스쳐와 말투를 할 줄 안다. 그것은 '그녀 자신'이다. 남자들은 매번, 아이처럼, 눈 앞의 그녀만을 갈구하고, 사랑한다. 기억은 그들에게 관심사가 아니다. 그들이 알던 '민정'과 지금 그들의 앞에 있는 '민정'이 다른 사람이든, 같은 사람이든, 그들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잠깐의 혼란을 거치고 나면 남자들은 현재에만 존재하는 민정을 받아들인다. 

당신이 너무 좋아서 당신을 믿을 것이라는, 불안한 환상

그녀는 마치 유령 같다. 그녀는 집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영수 앞에 유령처럼 나타나 두 팔을 벌리고 그를 맞이하거나, 불쑥 대문을 열고 그를 집으로 들인다. 그리고 결국 민정은 마치 처음 만나는 것처럼, 영수에게 돌아온다. '이렇게 처음인 것 같은 것,좋네요' 하지만 민정은 '진짜 처음'이라고 말한다. 과거가 없는 그녀에겐, 정말 이것은 처음, 그리고 온전히 그녀 자신이다. 당신 자신을 규정하는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시간의 누적이 없는 채로 그녀를 받아들인다. 언제나 처음처럼, 그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다 필요없이 그저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으로 족한, 그런 삶을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과거가 없는, 그저 현재에만 살아있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홍상수의 영화에서 시간은 단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에서처럼, 일정 시간동안의 이야기를 정확히 리플레이하여 다른 시점에서 보여주거나, '자유의 언덕'에서처럼 이야기의 조각조각들을 뒤섞어 그것을 관객의 머릿속에서 재배열하게 하는 식으로, 시간은 겹쳐지거나, 병렬되거나, 흩어졌다. 이 영화에서의 시간은, 말하자면 현재의 한 시점에 멈춰져 있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오직 환상 속에서만 재구성된다. 매번 새로운 사람이 되는 민정은 흐르는 시간, 누적되는 시간이 없이 바로 지금 여기에만 존재하는, 순간의 존재이다.

유령과도 같은 민정과 비교되는 두 남자, 민정을 잠시 만난 두 사람 재영과 상원은 잠깐의 언쟁 끝에 중학교 동창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들은 과거의 시간과 기억을 공유한다. 과거의 서로를 기억하고, 그럼으로써 그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 같아 보인다. 민정이 존재하지 않는 인물, 유령처럼 보이는 것은 그녀에게 과거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을 겹치고, 흐트러뜨리고, 그리고는 이 영화에 와서는 결국 시간을 없애버린다. 그리고는 묻는다. 서로가 다르게 기억하는 시간을 각자 간직하거나, 그 사이의 간극 사이에서 오해하거나 괴로워하거나, 흐트러진 시간을 애써 짜맞추려 하거나 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는, 만약 흘러가는 시간, 지속되는 시간, '당신의 것'인 시간의 기억이 없이도 '당신 자신'일 수 있을까, '당신 자신'을 알아볼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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