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민병훈, 그리고 김선욱 영화


그것은, 언젠가 내가 본 것들이었다. 밀려오고 썰물처럼 사라지는 어지럽고 산란한 마음들, 말하지 못한 고민들, 음악에 따라 불안하게 흩어지던 기억과 감정들은 공연장에 앉아있는 내가 때때로 마주하던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영화 '황제'에서 보았다. 

공연장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나는, 음악을 듣고 있지만 사실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음악의 흐름을 따라 내 마음은 먼 곳으로 향한다. 바라보지 못했던 감정들, 고민들, 흐트러진 마음들을 하나하나 음 위에 얹어본다. 설명되거나 해결되지 않는 감정들이 음악 위에서 선명해진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투명해진다. 공연장에서의 나는, 어쩌면 음악을 이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박된 자리에서, 멈춘 시간 속에서 마음을 바라본다. 말로 설명되지 않지만 또렷해지는 감정들을 하나하나 꺼내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위안을 받는다. 

꿈처럼 흩어졌던 감정들은, 자신의 육체를 통해 음악을 현실화하는 연주자를 통해 다시 이곳의 나에게로 돌아온다. 과거의 음악들, 악보 위의 미지의 음표들은 결국 머릿속 한낱 꿈이 아니라 현실에 발딛고 있는 나에게서 시작되고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 내가 바라보는 연주자라는 한 사람, 살아있는 육체의 힘과 강인함, 부드러움과 다정다감함에 나는 꿈처럼 들뜬 감정들을 현실로 다시 가져올 수 있다. 흩어졌던 감정들은 차분해진 채로 다시 현실의 나를 채운다. 

민병훈 감독의, 그리고 김선욱의 '황제'는 음악을 듣는다는 것에 대해 말한다. 아프고 다친 마음들이 김선욱의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마음을 열고, 말하고, 미소짓는다. 뭔가 깨달음을 얻거나, 문제가 갑자기 해결되거나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냥, 스르르, 마음을 연다. 영화를 보는 것은 마치 공연장에서의 내 모습을 투영하여 보고 있는 듯 했다. 연주를 통해, 음악을 통해 나를 바라보듯, 관객들 중 누군가도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보듬고 있으리라.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시대의 우울을 음악이 치유할 수 있을까. 영화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은 음악을 통해 투명해진다. 아마도 그것을 보여내는 것만으로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해결의 작은 실마리일지도 모른다. 소녀와 김선욱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주보며, 영화에서 '말하지 않는' 그들이 음악을 통해 서로에게 괜찮다고, 괜찮다고 말을 걸듯이, 우리는 연주자와 마주보지 않고도 그들의 음악에서 희미한 빛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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