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6일
열정의 축제, 음악으로 만드는 기적-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2008년 12월 14일
예술의 전당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구스타보 두다멜 지휘
번스타인,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중 심포닉 댄스
말러, 교향곡 1번
작년 루체른에서 그를 처음 만난 이후, 무대 위에서 아직 긴장한 모습이 남아있던 청년은 그새 전 세계 무대를 사로잡은, 촉망받는 차세대 지휘자가 되어 있었다. 빈민가에서 기적을 만든, 그의 가족과도 같은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음반들은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아내고, 유수의 오케스트라와의 연주는 어디에서나 기립박수를 받아내었다. 일년 새에, 그는 참 많이 성장하고, 많은 것들을 이루어내었다.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어릴 적 친구를 만나러 가듯, 두다멜과 그의 오케스트라를 만나러 가는 길은 아침부터 설레었다. 아직 그때의 앳된 모습은 남아 있을까, 그때만큼 신선한 연주를 들려줄까. 어쩌면 음악적으로 훌쩍 자란 모습에 놀라게 될 지도 몰라. 투명하게 반짝이는 겨울 햇살처럼, 작년에 들었던 그의 말러가 내내 귓가를 간질였다.
세계의 이목을 한몸에 받는, 이 대단한 청년을 만나기 위해, 공연시간 훨씬 전부터 로비는 북적였다. 베네수엘라의 상징인 빨강 노랑 파랑의 수건을 목에 두른 외국인들부터, 박찬욱 감독, 황인용 씨 등 큰 공연에서 만날 만한 사람들은 모두 모인 듯 했다. ‘이것은 기적이다’ 라는 홍보문구처럼, 두다멜이 자신의 가족과도 같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이곳에서 또 한번의 기적을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열기가 가득했다.
오늘의 프로그램은, 작년 BBC 프롬스에서의 공연으로 인해 그 명성이 자자했던 번스타인의 ‘웨스트사이드스토리’의 모음곡인 ‘심포닉 댄스’ 가 1부에, 그리고 2부에는 말러 교향곡 1번이 배치된, 단촐하면서도 간결한 프로그램이었다.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보여 주겠다는 깔끔한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었다.
넘칠 정도로 꽉 들어찬 청년들만으로도 무대는 에너지가 넘쳤다. 긴장하거나 엄격한 분위기가 아닌, 마치 축제 전야같은 분위기. 비로소 오늘의 스타 두다멜이 들어온다. 여느 때처럼 얼굴 가득한 환한 미소로, 자 이제 한번 시작해 볼까, 하는 심정으로 가뿐하게 곡을 시작한다. 화려한 음색과 강렬한 효과음들, 열기를 내뿜는 금관으로 뮤지컬같은 화려한 무대를 재현한다. 온몸과 표정으로 무대를 압도하는 두다멜의 카리스마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합창석 정중앙 자리를 얻었던 건 정말 행운이었다. 큰 동작과 호흡으로 때로는 함께 춤추고, 사랑을 나누고, 분노하고, 생각에 잠기는 표정있는 지휘는 그것만으로도 음악을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음악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면서도, 각 파트의 섬세함을 놓치지 않는 지휘, 깔끔하고 정확하면서도 음악 그 자체를 놓치지 않는다. 곡의 하이라이트인, 프롬스에서도 앵콜로 나왔던 ‘맘보’는 기대했던 것보다 조용하게 정리된다. 화려하게 질주하며 파티장과 혼돈의 아수라장을 가로지르던 음악은 주인공의 죽음에 이은 에필로그에서 조용히 마무리된다. 마지막 음이 사그라들고도 한동안, 아주 오랫동안 그는 음을 놓치지 않는다. 애도의 침묵, 제2 바이올린 솔로의 비브라토만으로 이루어진 길고 긴 침묵을, 그는 음악의 일부로 만든다. 마지막 하나의 침묵까지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감고 손을 가슴에 모은 채 긴장된 침묵의 시간을 선사한다. 음으로, 그리고 침묵으로 오케스트라를 장악하고 관객을 압도하는 이 지휘자, 대단한 카리스마를 지녔다. 그가 손을 내려놓자, 침묵을 깨는 함성과 박수가 들린다. 루체른에서의 환호를 압도하는, 이 청년을 충분히 함박웃음짓게 만드는 열광적인 환호다. 이정도의 음량과 정열적인 음색을 지닌 오케스트라와, 이들을 적절히 통제하고 터트려줄 줄 아는 지휘자와의 환상적인 궁합이라니, 기대 이상이었다.
인터미션 이후 연주된 말러 교향곡 1번은, 작년 빈필와 두다멜의 연주로 들었던 바로 그 곡이라 기대가 더 컸다. 음량은 확실히 힘이 있었지만, 조금은 덜 정제된 듯, 아직 유스오케스트라인 탓인지 세련됨은 조금은 부족했다. 호불호가 엇갈릴 만한 템포의 극단적인 변화-너무 느린 1악장과 갑자기 빨라지는 패시지들의 조금은 어색한 대비, 그리고 바닥에서 1센티 쯤은 떠 있는 듯한, 어딘가 들뜬 듯한 현이 촉촉하고 탄력있는 빈필과는 대조되었던 탓인지 3악장까지는 음악에 그리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역시 폭발하는 피날레에서, 그들의 음악은 진가를 발휘했다. 표제처럼, ‘타이탄(거인)’이 한걸음 한걸음 거대한 포효와 함께 찬란한 새 세계로 걸어나가듯, 이제 막 빛나는 세계로 당당한 한 걸음을 내딛는 오케스트라와 젊은 지휘자는 온 힘을 다해, 힘차게 나아갔다. 불꽃처럼 빛나는 금관과, 질주하는 현의 강렬함은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다. 이 피날레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구 반대편 빈민가에서 날아온, 싱싱한 젊음으로 가득찬 청년들과, 빛나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찬사와 축복이 가득한 재능있는 젊은 지휘자는 함께 만들어낸 음악으로 ‘기적이 사라진 시대’에 감동적인 기적을 선사했다. 그것은 살아나갈 수 있다는 희망, 가슴 가득 음악을 타고 전해지는 무한한 감동, 어떤 언어로도 전하기 힘든 축복이었다.
기대하던 대로, 앵콜은 번스타인의 <맘보>. 프롬스 영상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신나고 열정적이다. 말러가 끝나고 두다멜이 무대 뒤로 들어가고 잠시동안 불이 꺼진 동안은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 휘파람과 환호와 함성이 계속되는 사이로 불이 켜지자 단원들은 모두 빨강 파랑 노랑에 별이 그려진, 베네수엘라라고 씌여진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1부에서의 차분함을 완전히 뒤엎는, 그야말로 록그룹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환호 사이로, 악기를 던지고 일어났다 앉았다, 아예 의자에서 일어나서 무대를 돌아다니는 연주자들 덕분에, 앵콜 연주는 한판의 축제가 된다. 맘보에 이어진 곡은 히나스테라의 <말람보>. 압도적인 연주와 활력으로 무대와 객석은 뜨겁게 달궈진다. 곡이 끝나고 유니폼을 던져줄때는 축제의 한복판. 합창석에서도 그 많은 유니폼 중에 하나를 받지 못한 게 아직도 아쉽다. 두다멜은 객석까지 내려가 엘 시스테마 있던 시절 자신에게 지휘를 가르쳤던 곽승 씨에게 유니폼을 입혀드리고 감격의 포옹을 나눈다.
축제와 음악, 즐거움과 열정과 젊음이 하나로 어우러진, 순수한 음악의 즐거움이 오랜만에 마음을 들뜨게 한다. 마치 마티스의 그림처럼, 원색의 화려한 열기가 채 정돈되지 않은 채 그 뜨거움을 발산하고 있는 그들의 열정과 힘이 빚어낸 음악이 오랫동안 내 안에서 불꽃처럼 빛날 것 같다. 내년부터 LA필을 맡아 음악적으로 조금 더 진지하게, 내면의 폭발하는 힘을 세련되게 갈고 다듬으며 큰 한걸음을 내딛을 두다멜의 행보도, 두근거리며 기다릴테다.
...바로바로바로 이날의 앵콜 실황...(영상:크레디아)
# by | 2008/12/16 00:11 | Musique | 트랙백(1) | 덧글(2)


![[수입] Arvo Part - Alina / Vladimir Spivakov, Dietmar Schwalke](http://image.aladdin.co.kr/coveretc/music/coveroff/2972436488_1.jpg)


![[수입] 야콥 프로베르거 : 쳄발로 작품집](http://image.aladdin.co.kr/coveretc/music/coveroff/2212436152_1.jpg)
![[수입] 에릭 사티 : 피아노곡과 실내악](http://image.aladdin.co.kr/coveretc/music/coveroff/4881908723_1.jpg)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오오 두다멜!
열정의 축제, 음악으로 만드는 기적-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스스로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예술의 전당에서 14일에 했던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공연. 무려 R석으로 질러서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서 봤다. 그리고 외쳤다.저기 있는 사람들 중에 지휘자를 포함해서 전부 다 나보다 어려!!!!!!그리고 다시 외쳤다.그래도 액면가는 내가 더 젊어!!!!!! (정확히 말하면, 애들 얼굴이 유스가 아닌 애들이 좀 있었다능...)귀엽더라......more
트랙백 걸었습니다~